본문 바로가기
시와 함께/작가별 시

안도현 시 모음

by MrPaver 2019. 12. 30.

 '연탄 한 장', '너에게 묻는다'로 유명한 안도현 시인의 대표시 모음을 준비해보았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들에 쓰인 어휘들은 대체적으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이 많은 이들이 시를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주변의 보잘 것 없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소박한 사물들을 바라보고, 이들을 소재로 하여 시를 씁니다. 그리고 그런 단순한 사물들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진리를 짧은 격언과 구절을 이용하여 단순명쾌하게 표현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안도현 시인을 아포리즘적 시인이라고도 합니다. '아포리즘'은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것으로 격언, 금언, 잠언, 경구 등을 가리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연탄'을 소재로 한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짤막한 격언으로 사사롭고 하찮아 보이는 존재에서 교훈과 삶의 가치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에 대해 짤막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출처 - https://www.kyobostory.co.kr/contents.do?seq=565

시인.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개인적 체험을 주조로 하면서도 사적 차원을 넘어서 민족과 사회의현실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그려내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시집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모닥불"(1989), "바닷가 우체국"(1999) 등이있다.(출처 - zum 학습백과 http://study.zum.com/book/14105)

 


<안도현 시모음>

 

간격

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그대에게 가고 싶다

안도현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개 띄워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잇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뜻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싶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신천지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싶다.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 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히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연탄의 의미에 대하여 _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난방 연료로 주로 '연탄'을 사용했다. '연탄'은 기성세대에게 있어추억의 대상이면서 때로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많은 서민들이 연탄가스로 생명을 잃기도 했기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연탄'이 주는이미지는 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희생'과 '사랑'이다. 가난한 서민들, 달동네에 사는 서민들에게는 '연탄'만큼 소중한 연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민들은 겨울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연탄'을 창고에 쌓아 놓는 일이었다. 언덕 길 위 마을에 '연탄'을 배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동네는 지게에 '연탄'을 지고 오르기도 했고, 구멍을 끈으로 묶어 몇 개씩 나르기도 했다. 하지만 창고에 '연탄'이 가득히 쌓인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겨울준비를 끝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연탄'을 사용하고서는 하얀 연탄을 집앞 쓰레기통 앞에 쌓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가 언덕길에 눈이 내려 미끄러울 때면 그 '연탄'을 발로 으깨어 연탄재를 눈길 위에 뿌렸다. 눈길위에 뿌려진 연탄재는 눈길의 미끄러움을 막아 주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편안하게 그 길을 걸어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출처 - zum 학습백과 http://study.zum.com/book/14105)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 한 장과 너에게 묻는다의 관계에 대하여 _ '너에게 묻는다'는 '연탄'혹은 '연탄재'라는 보잘 것 없는 대상 속에서 타인을 위한 희생의 가치를 찾아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참된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연탄 한 장과 유사하다. 또한 '연탄'의 가치를 '너에게 묻는다'는 형태로 묶는다면 두 편의시를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두 시는 개별 작품인 동시에, 마치 '너에게 묻는다'가 이 시의 마지막 연에 사용되더라도자연스러울 만큼 내용의 일치성을 보인다.(출처 - zum 학습백과 http://study.zum.com/book/14105)

 

 

12월 저녁의 편지

 

안도현

 

12월 저녁에는
마른 콩대궁을 만지자
콩알이 머물다 떠난 자리 잊지 않으려고
콩깍지는 콩알의 크기만한 방을 서넛 청소해 두었구나
여기에다 무엇을 더 채우겠느냐
12월 저녁에는
콩깍지만 남아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늙은 어머니의 손목뼈 같은 콩대궁을 만지자

 

 

봄이 올 때까지는

 

안도현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가을 산

안도현
 

어느 계집이 제 서답을 빨지도 않고
능선마다 스리슬쩍 펼쳐놓았느냐
 
용두질이 끝난 뒤에도 식지 않은, 벌겋게 달아오른 그것을
햇볕 아래 서서 꺼내 말리는 단풍나무들

 

 

겨울밤에 시쓰기

안도현

연탄불 갈아 보았는가
겨울 밤 세 시나 네 시 무렵에
일어나기는 죽어도 싫고, 그렇다고 안 일어날 수도 없을 때
때를 놓쳤다가는
라면 하나도 끓여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벌떡 일어나 육십촉 백열전구를 켜고
눈 부비며 드르륵, 부엌으로 난 미닫이문을 열어 보았는가
처마 밑으로 흰 눈이 계층상승욕구처럼 쌓이던 밤

나는 그 밤에 대해 지금부터 쓰려고 한다
연탄을 갈아본 사람이 존재의 밑바닥을 안다,
이렇게 썼다가는 지우고
연탄집게 한번 잡아 보지 않고 삶을 안다고 하지 마라,
이렇게 썼다가는 다시 지우고 볼펜을 놓고
세상을 내다본다, 세상은 폭설 속에서
숨을 헐떡이다가 금방 멈춰 선 증기기관차 같다
희망을 노래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를 생각하는 동안
내가 사는 아파트 아래 공단 마을
다닥다닥 붙은 어느 자취방 들창문에 문득 불이 켜진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 자기 자신을 힘겹게도 끙, 일으켜 세워
연탄을 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리수출자유지역 귀금속공장에 나가는 그는
근로기준법 한줄 읽지 않은 어린 노동자
밤새 철야작업 하고 왔거나
술 한 잔 하고는 좆도 씨발, 비틀거리며 와서
빨간 눈으로 연탄 불구멍을 맞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 타버린 연탄재 같은 몇 장의 삭은 꿈을
버리지 못하고, 부엌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연탄냄새에게 자기 자신이 들키지 않으려고
그는 될수록 오래 숨을 참을 것이다
아아 그러나, 그것은 연탄을 갈아본 사람만이 아는
참을 수 없는 치욕과도 같은 것
불현듯 나는 서러워진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눈발 때문이 아니라
시 몇 줄에 아둥바둥 매달려 지내온 날들이 무엇이었나 싶어서
나는 그 동안 세상 바깥에서 세상 속을 몰래 훔쳐보기만 했던 것이다

다시, 볼펜을 잡아야겠다
낮은 곳으로 자꾸 제 몸을 들이미는 눈발이
오늘밤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나는 써야겠다,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지금 내가 쓰는 시가 밥이 되고 국물이 되도록
끝없이 쓰다 보면 겨울 밤 세 시나 네 시쯤
내 방의 꺼지지 않은 불빛을 보고 누군가 중얼거릴 것이다
살아야겠다고, 흰 종이 위에다 꼭꼭 눌러
이 세상을 사랑해야겠다고 쓰고 또 쓸 것이다

 

 

우주

안도현

잠자리가 원을 그리며 날아가는 곳까지가
잠자리의
우주다

잠자리가 바지랑대 끝에 앉아 조는 동안은
잠자리 한 마리가
우주다

 

 

외로움

안도현

시 쓰다가
날선 흰 종이에 손 벤 날
뒤져봐도
아까징끼 보이지 않는 날

 

 

교실에서

안도현

아버지에 대해 말해보라 했는데 아이들이 운다
중학교 1학년 국어 말하기 시험 시간
약도 한 첩 못 써보고 돌아가신 아버지
내가 똥을 퍼도 공부시킨다 너는 큰물 가서 놀아야지
늦가을 미루나무 같은 뒷모습
보고 있을까 혼자 남은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이여
나는 왜 선생이 되어 이 착한 아이들을
울리고 있을까 용서받지 못할 일이여 내가 울고 있을까
가난은 부끄러움도 죄도 아니다 말도 못하고
농사꾼 아버지 막노동 아버지 다리 다친 아버지
먼 사우디 떠난 아버지
또 있다
이 세상에서 아예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
아버지는 왜 아들에게 눈물로 올까
나라와 역사의 색칠할 수 없는 일들이
한국의 노오란 교실에 가득하다 축소된 사진처럼
나도 딱딱한 농민의 아들 나도 스포츠령 머리로 엎드려 운다
국어시간이여 마침내 눈물바다여 열세 살들이여
설움없이 건너는 세상이 있다면 우리나라 아니다

 

 

농민과 군인

안도현

군인도 원래 농민의 아들이었다
학교 갈 때 넣어 가던 도시락 열어보면
꽁보리밥
고추장
멸치 한 마리, 대가리도 굵었다
그의 아버지 지게 지고 들일 나갈 때
허리춤에 책보 묶어 열심히 뛰어가던
가난한 집 즐거운 소년이었다
공부를 마치면 군인이 되겠다, 나는
조국을 지키는 자랑스러운 육군 장교
그의 아버지 봄이 와서 볍씨 뿌릴 때
아들은 연병장에서 규율 복종 엄격
각개전투와 총검슬 배웠다
어깨 위엔 빛나는 계급장, 가슴에는 국가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 논에서 모를 심을 때
아들을 사병에게 푸른 군인정신을 심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농민으로 사는데

 

 

'시와 함께 > 작가별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용택 시 모음  (0) 2020.01.01
박목월 시 모음  (0) 2019.12.31
조지훈 시 모음  (0) 2019.12.29
나태주 시모음  (0) 2019.12.29
서정주 시 모음  (0) 2019.12.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