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와 함께/작가별 시

김용택 시 모음

by MrPaver 2020. 1. 1.

 “살아 있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가 살아 있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 내가 한가하게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서 시 쓴 것 아니다. 젊어서는 시골서 농사짓고 교사생활 하면서 썼고, 전주에 살면서는 환경운동으로 뛰어다니면서 쓰고, 지금은 학교 문제를 비롯해서 여러 비환경적인 권력과 싸우면서 쓴다.”
혹시 어떤 시인이 했는 말인지 아시겠나요?



바로 김용택 시인이 신동아 2007년 1월호 인터뷰 중에서 한 말입니다.

네, 오늘 알아볼 시인은 김용택 시인입니다.

김용택 시인 - 출처(http://m.ch.yes24.com/Article/View/17235)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은 특정한 문학적 흐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김용택 시인의 시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로 읽는 이를 치유합니다. 삭막한 도시 생활에서 잊고지내게 되는 그리고 등한시하고 파게하게 되는 자연을 우리 삶 속에 가져와 담담한 언어로 그리는 김용택 시인은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김용택 시인은 전라북도 임실 진메마을에서 태어나 순창농고를 졸업하였습니다. 이듬해에 임용시험을 보고 스물한 살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교직 기간 동안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임실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썼습니다. 섬진강 연작으로 유명하여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칭이 있다.

김용택은 문화가 복합되고 모이는 서울이 아니라 시골에 지내며 글을 쓰는 드문 작가입니다. 문화의 수도인 서울에서 헣활도하지 않으면 쉽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시대이지만 시인은 꾸준히 작품을 내고 있으며 꾸준히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김용택의 시인의 글을 부면 아이들과 자연이 주를 이룹니다. 시인은 풍요로운 자연과 호흡하고 자연을 느낍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글을 쓰며 아이들이 자연과 세상에 대해 교감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작품은 문학 작품이 됩니다.

김용택 시인은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도 합니다. 아이들만 보다가 젠 어른들만 보려니 좀 답답하지 않냐는 방송인 김제동의 질문에 “아유, 말도 마요. 우리 기성세대들 보고 있으면 답답해요. 낡아 빠진 틀을 가지고 싸움질하고 이념이니, 좌우니 이러고 있는 모습이 넌더리가 나요. 우리가 해방 직후에 사는 사람들도 아니고. 국민들을 뭘로 아는 건지…. 국민들 생각까지 일일이 다 간섭하고 이리저리 훈수 두고…. 아직도 획일화된 이분법적 가치판단을 요구하잖아요. 우리편 아니면 완전히 말살하겠다는 것,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지요.([출처] 경향신문 ‘김제동의 똑똑똑’ 2010년 4월)”라고 말했다.

김용택 시인이 보고있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과 아이들만이 아닙니다. 시인은 자연과 아이들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공존하는 한국 농촌의 황폐함에 주목하기도 합니다. 험난한 세월을 견디며 살아 왔으면 이제는 폐가만이 황량한 농촌 마을과 피폐해진 땅을 갈며 살아가는 사람들, 지난한 역사를 흘러오면서 억세진 어머니와 누이의 손등에서 김용택 시인은 나라의 아픔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잊혀졌던 우리의 고향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김용택 시인의 시집으로 『섬진강』 『맑은 날』『누이야 날이 저문다』『그리운 꽃편지』『강 같은 세월』『그 여자네 집』등이 있습니다. 산문집으로는 『작은 마을』『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섬진강 이야기』『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인생』 등이 있습니다. 이밖에도 장편동화 『옥이야 진메야』, 성장소설 『정님이』,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내 똥 내 밥』, 동시엮음집 『학교야 공차자』, 시엮음집 『시가 내게로 왔다』 등 많은 저작물이 있습니다. 1986년 김수영문학상을, 1997년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채널 예스 http://m.ch.yes24.com/Article/View/17235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김용택 시모음>

 

 

참 좋은 당신

김용택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김용택

외딴집,
외딴집이라고
왼손으로 쓰고
바른손으로 고쳤다

뒤뚱거리며 가는가는 어깨를 가뒀다

불 하나 끄고
불 하나 달았다

가물가물 눈이 내렸다

 

 

세상의 비밀들을 알았어요

김용택

닫힌 내마음의 돌문을열며
꽃바람 해바람으로 오신 당신
당신으로 하여
별이 왜 반짝이는지
꽃이 왜 꽃으로 피어나는지
세상에 가득한 그런 가만가만한
비밀들을 알게 되었어요

아, 내 가는 길목마다
훤하게 깔린 당신
돌부리 끝에 걸려 넘어져도
거기 언뜻 발끝이 아프게 부서지는 당신
이 초겨울 빗줄기 속에서도
들국 같은 당신의 얼굴이
하얗게, 하얗게 줄지어 달려옵니다

이 길에 천둥 번개 칠까 두려워요

 

 

사람들은 왜 모를까

김용택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 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그때

김용택

허전하고 우울할 때
조용히 생각에 잠길 때
어딘가 달려가 닿고 싶을 때
파란 하늘을 볼 때
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둥둥 떠가면 더욱더
저녁노을이 아름다울 때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둥근 달을 바라볼 때
무심히 앞산을 바라볼 때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귓가를 스칠 때
빗방울이 떨어질 때
외로울 때
친구가 필요할 때
떠나온 고향이 그리울 때
이렇게 세상을 돌아다니는
내 그리움의
그 끝에
당신이 서 있었습니다.

 

 

그랬다지요

김용택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그이가 당신이예요

김용택


나의 치부를 가장 많이 알고도 나의 사람으로 남아 있는이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사람이 당신입니다
나의 가장 부끄럽고도 죄스러운 모습을 통째로 알고 계시는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하는 분일 터이지요
그분이 당신입니다
나의 아흔아홉 잘못을 전부 알고도 한점 나의 가능성을
그 잘못 위에 놓으시는 이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이일 테지요
그이가 당신입니다
나는 그런 당신의 사랑이고 싶어요
당신의 한점 가능성이 모든 걸 능가하리라는 것을
나는 세상 끝까지 믿을래요
나는,
나는 당신의 하늘에 첫눈 같은 사랑입니다.

 

 

나는 당신의 꽃

김용택

내 안에
이렇게 분이 부시게
고운 꽃이 있었다는 것을
나도 몰랐습니다.
몰랐어요

정말 몰랐습니다
처음 이예요
당신에게 나는
이 세상 처음으로
한 송이 꽃입니다

 

 

내가 불입니다

김용택

언젠가 부터
당신을 향해 타오르는 사랑의 불을
나는 물로 끌수 있을지 알았습니다

불길이 목울대를 넘나들 땐
한 방울의 물을 찾아
천지를 헤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불길은 갈증을 넘어서 버렸습니다

어느덧
물로 끌 수 없는
큰 불길에 싸여 있는 내 가여운 영혼
한 방울의 물을 찾아
천지를 헤매고도 남을
이 영혼을 당신은 아시기나 한지요

아,
그냥 두지요
재가 되도록 타게 그냥 두지요

불은 타올라야 합니다
타오르는 불에
몇 방울의 물은 물이 아닙니다
그도 따라 뜨거운 불입니다

아,
당신을 향해 타오르는
이 불길로 내가 다 타겠습니다

내가 불이 되겠습니다

 

 

별 하나

김용택

당신이 어두우시면
저도 어두워요
당신이 밝으시면
저도 밝아요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있는 내게
당신은 닿아 있으니까요
힘내시어요
나는 힘없지만
내 사랑은 힘있으리라 믿어요
내 귀한 당신께
햇살 가득하시길
당신 발걸음 힘차고 날래시길 빌어드려요
그러면서
그러시면서
언제나 당신 따르는 별 하나 있는 줄 생각해 내시어
가끔가끔
하늘 쳐다보시어요
거기 나는 까만 하늘에
그냥 깜박거릴게요

 

 

봄 옷 입은 산 그림자

김용택

그저께 엊그저께 걷던 길
어제도 걷고 오늘도 걸었습니다

그저께 엊그저께 그 길에서
어제 듣던 물소리
오늘은 어데로 가고
새로 찾아든 물소리 하나 듣습니다

문득 새로워 걷던 발길 멈추고
가만히 서서 귀기울여봅니다

아, 그 물소리 새 물소리
봄옷 입은 산그늘 강 건너는 소리입니다

 

 

빗장

김용택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시립기만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논둑 길을 마구 달려보지만
내 달아도 내달아도
속 떨림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시도 때도 없이
곳곳에서 떠올라
비켜주지 않는 당신 얼굴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겠어요
무얼 잡은 손이 마구 떨리고
시방 당신 생각으로
먼 산이 다가오며 어지럽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당신을 향해 열린
마음을 닫아보려고
찬바람 속으로 나가지만
빗장 걸지 못하고
시린 바람만 가득 안고
돌아옵니다.

 

 

당신 없는 하루

김용택

해 뜨니
앞 강물은 저리 흐르요
당신 떠난 이 나라
쳐다볼 곳 없는 내 눈길이
먼 허공을 헤매이고 헛헛한 마음도
이리 기댈 곳 없으니
이 맘이 시방 맘이 아니요
차라리
이 몸 이 맘
이 강물이 다 가져가불고
저 강물에 얼른얼른
오늘 해도 져불면 좋것소.

 

 

누이야 날이 저문다

김용택

누이야 날이 저문다
저 물을 따라가며
소리 없이 저물어 가는 강물을 바라보아라
풀꽃 한 송이가 쓸쓸히 웃으며
배고픈 마음을 기대오리라
그러면 다정히 내려다보며, 오 너는 눈이 젖어 있구나

배가 고파
바람 때문이야
바람이 없는데?
아냐, 우린 바람을 생각했어

해는 지는데 건너지 못할 강물은 넓어져
오빠는 또 거기서 머리 흔들며 잦아지는구나
아마 선명한 무명 꽃으로
피를 토하며, 토한 피 물에 어린다

누이야 저 물의 끝은 언제나 물가였다
배고픈 허기로 저문 물을 바라보면 안다
밥으로 배 채워지지 않은 우리들의 멀고 먼 허기를

누이야
가문 가슴 같은 강물에 풀꽃 몇 송이를 띄우고
나는 어둑어둑 돌아간다
밤이 저렇게 넉넉하게 오는데
부릴 수 없는 잠을 지고
누이야, 잠 없는 밤이 그렇게 날마다 왔다

 

 

나를 잊지 말아요

김용택

지금은 괴로워도 날 잊지 말아요.
서리 내린 가을날
물 넘친 징검다리를 건너던
내 빨간 맨발을
잊지 말아요.

지금은 괴로워도 날 잊지 말아요.
달 뜬 밤, 산들바람 부는
느티나무 아래 앉아
강물을 보던 그 밤을
잊지 말이요.

내 귀를 잡던 따스한 손길,
그대 온기 식지 않았답니다.

나를 잊지 말아요.

 

 

약이 없는 병

김용택

그리움이, 사랑이 찬란하다면
나는 지금 그 빛나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아파서 못 견디는 그 병은
약이 없는 병이어서
병중에 제일 몹쓸 병이더이다

그 병으로 내 길에
해가 떴다가 지고
달과 별이 떴다가 지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수없이 돌아흐르며
내 병은 깊어졌습니다

아무리 그 병이 깊어져도
그대에게 이르지 못할 병이라면
이제 나는 차라리 그 병으로
내가 죽어져서

아, 물처럼 바람처럼
그대 곁에 흐르고 싶어요


 

'시와 함께 > 작가별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소월 시 모음  (0) 2020.01.05
박목월 시 모음  (0) 2019.12.31
안도현 시 모음  (1) 2019.12.30
조지훈 시 모음  (0) 2019.12.29
나태주 시모음  (0) 2019.12.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