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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

겨울 관련 시 모음 _ 백석, 안도현, 이해인, 박노해, 류시화

by MrPaver 2019. 12. 16.

앙상해진 나무들을 보며, 두꺼워진 제 외투를 부여잡으며, 입김을 내뿜으며, 재잘재잘 걸어가는 학생들을 보며 겨울이 깊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겨울시들을 찾아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 관련 시들은 겨울에 감상해야 그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눈까지 펑펑 내려주면 겨울시에 흠뻑 젖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언젠가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며, 난로에 손을 녹이며, 겨울 눈길을 걸어가며, 오늘 읽은 겨울 관련 시들이 눈 관련 시들이 떠오른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읽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겨울 시들과 겨울 풍경 사진들을 모아봤습니다. 눈 사진과 겨울 사진들은 시를 느끼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겨울 시모음1>

겨울날의 희망

박노해

 

따뜻한 사람이 좋다면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꽃 피는 얼굴이 좋다면
우리 겨울 침묵을 가질 일이다

빛나는 날들이 좋다면
우리 겨울밤들을 가질 일이다

우리 희망은, 긴 겨울 추위에 얼면서
얼어붙은 심장에 뜨거운 피가 돌고
얼어붙은 뿌리에 푸른 불길이 살아나는 것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우리 겨울 희망을 품을 일이다

<겨울 시모음2>

겨울편지

이해인

친구야
네가 사는 곳에도
눈이 내리니?

산 위에
바다 위에

장독대 위에
하얗게 내려 쌓이는

눈만큼이나
너를 향한 그리움이
눈사람 되어 눈 오는 날

눈처럼 부드러운 네 목소리가
조용히 내리는 것만 같아

눈처럼 깨끗한 네 마음이
하얀 눈송이로 날리는 것만 같아

나는 자꾸만
네 이름을 불러 본다.

<겨울 시모음3>

눈 위에 쓴 시

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랑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겨울 시모음4>

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뭄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제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다

<겨울 시모음5>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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